잃어버린 왕국 [한다사 韓多沙], 그 흔적을 찾아서 (상) - 도 비 문 찬인

하동신문 0 674

잃어버린 왕국 [한다사 韓多沙], 그 흔적을 찾아서 (상)

 

                                도 비   문  찬인

 

 섬진강 동안의 하동은 낙노국(樂奴國)이래 오랜 세월 대가야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고 하였다.

 하동과 대가야의 관계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지난 8월6일 고령을 찾았다.

 2박3일의 고령 대가야 답사.

예상을 뛰어넘은 고령 대가야 고분군, 발굴된 고분 내부의 부장품과 순장의 규모등이 가야연맹의 맹주 대가야의 유적으로 손색이 없었다

 다음날 우륵박물관을 찾았다. 그 전시규모나 내용은 평이 하였으나 입구의 소개글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우륵이 지은 12곡의 노래 제목중 하동의 노래인 [달기 達己]가 있었다

 ‘하동포구 팔십리에 물새가 울고....’ 보다 1500년전에 하동의 노래가 있었다니.....

 

대가야는 서기 400년 광개토대왕의 금관가야 침공 이후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여 가야사회를 이끌어 왔었는데, 

6세기 들어 고대국가로 성장한 백제가 섬진강 동안에 대한공세를 강화하자 지도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가야의 가실왕은 가야연맹 12나라를 결속시키고자 악사 우륵에게 중국의 쟁(箏)을 개량하여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작곡하게 하였다.

 우륵이 지은 12곡의 제목은 상가라도, 하가라도, 보기, 달기, 사물, 물혜, 하기물, 사자기,거열, 사팔혜, 이사, 상기물등 가야연맹의 지역명이었다.

 이 지역들은 대가야 연맹을 형성했던 작은 나라들이었다.

여기서 달기(達己)는 바로 하동이다

예로부터 달속에 두꺼비가 살고 있다는 신화에서 달을 한자어로 표현할 때 ‘섬(蟾)’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섬진강의 섬은 본래 ‘달’이었고 진은 ‘나루’였을 것이다. ‘달나루’는 ‘달래’로 줄여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하동의 옛 이름중의 하나인 ‘달래’와 ‘달기’는 매우 유사한 이름이 된다

가야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달기’를 하동으로 비정하였다 한다

 하동에 낙노국 이후에도 나라가 존재했다.

전율이 왔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상념이 꼬리를 물었다. 큰 숙제를 안고 하동으로 돌아왔다

 

다사(多沙)와 관련한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례이사금 11년조(294년)에

“ 다사군이 가화(嘉禾, 상서로운 벼이삭)를 바쳤다”라는 내용이 처음으로 나온다.

고려 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권34 잡지(雜志) 권3 하동군조에 

‘하동군은 본래 한다사군이었는데 경덕왕이 757년 개명하였다.’

<일본서기> 권17 계체기. 흠명기등에

 “ 다사진(多沙津), 대사(帶沙), 대사진(帶沙津),체사(滯沙)”등의 지명이 나온다

 이때의 대사,체사는 옛 일본식 발음으로 다사라 불렸다 한다

그런데 다사(多沙)에 크다는 의미의 한(韓)을 붙여 한다사(韓多沙)라 하였다.

 고대 지명에 한(韓)이나 대(大)를 붙이는 경우 아주 큰 고을이거나 국력이 강대하거나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함을 볼 때 ‘다사’에 ‘한’을 붙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사’는 무슨 뜻일까?

‘한’은 클 한(韓)으로 크다, 환하다는 뜻이고, ‘다사’는 따사롭다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한다사’는 ‘크게 따사로운 땅’이란 의미가 된다

좀더 의역을 하면 ‘환하고 따사로운 곳“이 된다. 

환하고 따사로우면 계절로는 봄이다. 봄은 만물이 움직이는 시작하는 때이다.  

아!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이란 의미이구나. 

요즘말로 하면 바로 ’생명의 땅‘이다.

모래가 많아서 ‘한다사’라 이름 붙였다는 어거지는 정말 말이 아니다

 

 그런데 왜 생경한 하동이란 이름으로 바꾸었을까?

신라가 통일 이후에도 지방의 세력과 독립성이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의 호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첫 단추로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 하여 지역의 독자적 색채를 지워내고자 하였다

이때가 경덕왕 757년이다

 하동(河東)은 물하(河) 동녘 동(東) 글자 그대로 ‘물가의 동쪽’이다 

 두치강, 다사강등 섬진강의 옛 이름대로 라면 강의 동쪽이니 ‘강동(江東)’이어야 하는데 왜 하(河)를 붙였을까?

 여재규의 <하동군사 河東郡史>에 의하면 당나라 초기의 한원(翰苑), 괄지지(括地志)등에 지금의 남원일대의 옛 지명이 기문(基文)이었고 그곳을 흐르는 강을 기문하(基文河)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기문하의 동쪽에 있다 하여 하동이라 하였다고 한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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