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자라는 나무처럼, 오늘도 그녀의 꿈은 자라고 -민자우편(진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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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자라는 나무처럼, 오늘도 그녀의 꿈은 자라고

-민자우편(진교면) 

 

                                        이경숙(시인, 상담사)

 

 어린이 집에 근무하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 진교로 향하는 길가의 나무는 숨바꼭질 하는 아이들처럼 여기저기 색색으로 모여져 있다. 어디선가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이 경쾌하기만 하다. 새로 생겨나는 메타세콰이어 길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맨발로 걷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 같다.

 진교는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여러 지역 버스들의 길목이 되고, 진주와 인접하고 있어서인지 유동인구가 많고 활기차다. 그런 이유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들도 자신의 일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옷차림도 세련되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트랑고민자우, 그녀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민자이다. 국적을 취득한 그녀의 한국이름은 민자우이다. 그녀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다. 올해 승급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1급 보육교사이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지 5년이 지났고 매사에 노력하는 그녀의 성품으로 보아 보육교사 일도 여느 선생님들만큼 잘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교에서 결혼이민자들의 집합교육을 맡고 있는 김영경 선생님이 그녀를 추천하고 칭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몇 해 전 여성단체가 주관한 결혼이민자 행사에서 그녀의 수기를 본 적이 있다. 주어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부를 수정했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별 어려움 없이 자랐던 그녀가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던 시절인지라 수기를 낭독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했던 그녀를 기억한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어떠한가? 지나간 시간을 추억처럼 담담하게 이야기 할 만큼 그녀는 변했고 그녀는 자신만만한 생활인이 되어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있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녀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고생이 많았다. 남편과 교제를 하는 동안에는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별 무리없이 지냈지만, 결혼은 생활이었고 메일만 주고받을 때와는 또 달랐다.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시골에서는 불가능했다.

 우선 쉽게 일할 수 있는 식당일을 시작하였다. 그런 중에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어린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일에 머물 수 없었던 그녀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보육교사 공부를 시작하였다. 제대로 인정받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컴퓨터에 매달려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원장님은 물론 주위 선생님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물론 제 남편의 도움도 컸죠!’ 라며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녀가 남편을 만난 건 그녀가 살고 있던 호치민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남편 선배의 도움이 컸다. 베트남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던 선배는, 그녀의 남편에게 베트남 여행을 제안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 그 형은 회계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를 소개해 주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기약도 없이 헤어졌지만, 막상 돌아오려니 그녀가 자꾸 생각이 난 남편이 차라도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했단다. ‘그랬더니 저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겠어요?’ 지금도 그 시간이 생각나듯 남편이 기분 좋게 웃는다. ‘그래서 결혼하게 되셨네요!’ ‘이런 멋진 아들도 생기고….’ ‘그럼요, 우리 아들이 멋지고말고요.’ 거실을 오가는 아들의 손을 잡아 옆에 앉힌다. 주변을 돌며 구경만 하던 아들이 멋지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 부끄러운 듯 웃으며 합류한다. 

 하나 뿐인 아들 동희는 직장 생활하는 엄마와 시간을 맞추어 집에 오려고 영어학원, 피아노학원, 한자공부 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여섯시란다.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추느라 여러 학원을 다니는 거야.’ 농을 걸 듯 하는 물음에 아이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들이라며 건강하게 웃는다.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장도 걸려있고,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인다.  

 그녀는 결혼 전 한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며 ‘한국 드라마가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거 같아요. 하얀 피부가 너무나 부러웠고 좋은 집에…’ 라며 말끝을 흐린다. 진정 그녀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의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많은 결혼이민자들이 한결같이 가슴에 품고 왔던, 이룰 수 없는 한바탕 꿈일 수도 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행복한 표정만 지으며 사는 꿈, 갈등도 근심도 없는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서 힘들게 살았던 지난날을 보상받고, 나아가 내 부모나 형제들에게 도움이 되는 꿈을 꾸며 온다. 그러나 그녀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꿈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결혼생활에서, 그녀들은 절망하기도 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시작하는 걸 보면서 진심으로 박수를 치는 일이 수없이 많다. 

 다행히 그녀의 친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은 아니다. 언니와 남동생, 그녀까지 모두 대학을 졸업하였다. 언니는 베트남에서 직원을 100여명이나 고용하고 있는 사장님이시다. 남동생도 중고 공구 등을 취급하는 무역업을 하고 있다. ‘동생은 얼마 전에 우리집에 일주일을 머물다 갔어요.’ 한다. 그녀는 아들이 남동생처럼 세계의 이곳저곳을 오가는 무역업을 했으면 좋겠단다. 그러나 수시로 변하는 동희의 꿈은 곤충학자였다가 또 경찰이었다가 지금은 수의사이다. 옆에 있던 그녀의 남편이 한마디 하신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야죠, 뭐.’ 

 그녀는 쉬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녀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관광통역사이다. 어렵긴 하겠지만 그녀는 쉼없이 노력할 것을 믿는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그녀의 보금자리를 찾아가듯 그녀의 꿈도 숨 가쁘겠지만 찾 아 가 리라 믿는다.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오려는 우리에게 곧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이른 축하를 보내며 그녀의 대문을 밀고 나온다. 겨울 저녁은 벌써 어둠을 몰아다 주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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